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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프로그램

잊지 말아야 할 역사,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 는 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 정권이 동맹국들과 함께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사망한 유대인은 약 6백만여명으로, 유렵 거주 유대인 중 약 ⅔에 해당한다.

 이러한 박해와 학살은 1935년 제정된 반유대주의 법, 뉘른베르크 법으로부터 시작했다. 이후 나치정권은  더 많은 유대인 차별 법들을 제정하고 집단폭력을 시행했다. 1930년 후반에는 나치정권이 팽창정책과 영토 확장을 추구하며 반유대주의적 정책을 독일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다른 국가들을 점령하면서 많은 동맹을 맺고, 유럽 통제를 확대하였다. 1942년에는 나치 독일이 대부분 유럽 대륙과 북아프리카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지도자들을 1939년 9일,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 민간인들과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대했다. 독일 당국은 점령지 폴란드에 유대인들을 고립시키고 빈곤하게 하기 위해 '게토'를 설립했다.

게토는 독일 점령군이 도시안에 유대인들을 강제로 혼잡한 환경에서 살도록 세운 구역이었다. 게토안의 삶은 굶주림, 만연한 질병과 무차별적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흘러 독일 당국은 다른 점령지에도 게토들을 세웠다. 이 게토에서 수십만명의 유대인들이 사망하였다.

 

1941년 나치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기로 결정지었다. 이 대량 학살은 독일의 소련 침공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독일 당국은 점령지들의 유대인들을 집단 총살했다. 총격 외에도 때때로 특수 설계된 이동식 가스 밴을 사용하여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이 같은 학살로 인해 200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1941년부터는 나치 독일은 폴란드에 '아우슈비츠' 와 같은 5개의 수용소들을 세웠다.

 독일 당국은 동맹국과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유럽의 유대인들을 이곳으로 이송했다. 수송된 자들은 강제 노동에 시달렸고 즉시 가스실에서 살해되었다. 이 수용소들에서 약 270만명의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이 홀로코스트는 아돌프 히틀러가 유럽의 유대인들의 학살을 야기시켰지만 독자적으로 행동 한 것은 아니다.

 다른 나치 지도자들과 독일 기관,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았다. 만약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홀로코스트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또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 중 유대인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나치는 유대인 외에도 동성애자, 장애인, 여호와의 증인 등 다른 집단들을 또한 위협으로 간주해 사살했다. 하지만 1945년 5월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유럽에서 홀로코스트와 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종전 후 많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삶을 재건하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출처 - 위키백과